복지자료

코로나 이후, 사회복지가 갈 길
  • 작성일시2020/05/0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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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라는 전세계적 재난

코로나19는 평범한 일상을 무너뜨렸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지만 질병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장 치명적이다. 특히 질병 전파를 막기 위해 사회적 격리가 꼭 필요한 감염병은 더욱 그렇다. 지역사회에서 밀려난 노인과 정신질환자들은 코호트 격리가 된 요양원이나 병원 안에서 죽어갔다. 폐암 말기의 남편은 아픈 자신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져온 콜센터에서 일하던 아내로부터 감염이 되어 생을 마감했다.

지역사회 돌봄이 자리를 잡아서 노인도 정신질환자도 자기 집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었다면, 콜센터의 근무환경이 좀 더 안전했다면, 아니 좀 더 근본적으로는 아내가 생계 걱정 없이 병든 남편을 간병할 수 있었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경제 문제, 고용 문제, 돌봄 문제가 한데 엉키게 만든 코로나19는, 단순한 공중보건위기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사회적 안전장치들이 얼마나 잘 작동하고 있느냐를 전면적으로 시험하는 사회적 재난이다. 그렇기에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방식은 우리사회의 사회적 위험 대응역량의 시금석이 되었다.


□ 코로나 대응과 민주주의의 승리

팬데믹에 대한 대응에서 민주주의의 우월성에 대해 천관율(2020)은 ‘재난 대응에 가장 중요한 자원은 물자가 아니라 정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권위주의는 구조적으로 정보 생산에 취약하다. 이 원리를 가장 비싸게 깨달은 사람은 중국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뚱이다. 대약진운동의 결과로 무려 3,000만 명이 기근으로 사망한 후인 1962년, 마오쩌뚱은 당 간부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가 없다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재난에 대한 대응기제로서 민주주의의 또 하나의 강점은 집단지성을 토대로 한 창의성이다. 신속성과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혁신적인 검사방법으로 세계를 경탄하게 한 드라이브 스루(Drive Thru) 방식의 선별진료소는 일부 전문가들이 낸 아이디어를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퍼져 나갔다.

이 밖에도 마스크 수급의 어려움을 경청하여 마스크 5부제를 도입하고, 긴급재난지원금의 보편지급을 논의하는 등 ‘아래로부터’ 의견을 들어 정책을 결정하고 수정해나가는 사례는 많다. 혹자는 ‘정책이 왜 오락가락하느냐?’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코로나19처럼 문자 그대로 ‘미증유(未曾有)’의 재난 앞에 처음부터 완벽하게 갖춰진 매뉴얼이란 있을 수 없다.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세운 정책을 일관성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수집되는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서 다양한 의견들을 듣고 결정을 해나가는 민주적인 방식이 장기적으로는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와 중국의 대비를 통해 밝혀졌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재난이 공동체를 약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는 요인이 된다. 민주주의는 결정을 하는 사람과 결정에 따르는 사람, 보호해주는 사람과 보호받는 사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가르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가 부족해지자 어려운 이웃을 위한 마스크를 만들기 시작한 광주의 마을공동체나 우한에서 온 교민들을 환영하는 SNS 손팻말을 든 아산의 시민들처럼 말이다. 코로나19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는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각자도생(各自圖生) 사회에 대한 공동체의 승리다.


□ 코로나19와 보편복지의 부상

신자유주의를 거치면서 포퓰리즘(populism)은 나쁜 복지의 대명사가 되었다. 본래 의미하고는 상관없이 포퓰리즘은 ‘퍼주기식 복지’와 동의어가 되었고, 다시 퍼주기식 복지는 보편복지와 동의어가 되어 ‘보편복지 = 퍼주기식 복지 = 포퓰리즘 = 국가 재정위기’의 프레임이 씌워졌다. 무상급식부터 아동수당까지 소득 수준에 따라 대상자를 제한하지 않는 모든 급여와 서비스가 ‘퍼주기식 복지’와 등치 되었고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리도 욕을 먹었던 무상급식도 아동수당도 이제는 보편복지의 모범사례로 자리 잡았다.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해 무상급식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것처럼 2020년 총선에서는 기본소득이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지는 의제로 떠올랐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시적으로 지급하는 긴급재난지원금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안에 대해 60% 가까운 국민이 찬성했다는 여론조사도 나왔다. 정부가 보편지급을 주저하는 사이에 발 빠르게 움직이는 지자체들도 있다. 소득과 나이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일정금액을 지급하는 ‘재난기본소득’이 경기도를 필두로 확대되고 있다(국회예산정책처, 2020).

엄격히 말하자면 재난기본소득은 기본소득(Basic Income)하고는 다른 개념이다. 본래 기본소득은 국가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자산·소득의 많고 적음, 노동 여부를 따지지 않고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가구별이 아닌 개인별로 같은 금액을 정기적으로 현금으로 지급하는 소득을 의미한다. 따라서 코로나19 같은 재난 상황에서 일회성으로 지급하는 재난지원금에까지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무리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과 다른 복지급여를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 소득 수준이나 인구학적 특성(아동, 노인, 장애인 등)과 관계없다는 ‘무조건성’임을 생각해보면,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일리가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의 취지가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황, 생존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생계가 위협받는 공전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것이라면, 지급방법 역시 새로운 패러다임을 따를 필요가 있다. 일부만 주기 위해 들어가는 행정비용에다가 국민들 사이를 갈라놓음으로써 발생하는 측정 불가능한 사회적 비용까지 감안한다면, 전 국민 지급이 훨씬 저렴하다. 전 국민 지급을 위한 예산을 도저히 확보할 수 없다면 차라리 국민 일인당 지원금을 조금 내리거나, 일단 다 지급하고 고소득자에게서는 과세 등의 방식으로 환수하면 된다.


□ 재난의 시대에 사회복지가 갈 길

코로나19는 사회복지가 나아갈 길에 대해서도 많은 성찰을 가져왔다. 40여 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지난 3월 18일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한 노동·시민단체의 제언’을 발표했다(참여연대사회복지위원회, 2020). 코로나19가 보건의료의 영역을 넘어 소득보장부터 공공의료 확대, 지역사회 돌봄,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까지 시민의 삶의 질과 관련된 광범위한 영역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냈음을 알 수 있다.

참여단체들은 무엇보다도 코로나19가 공동체적 연대를 통해 극복해나가야 하는 사회적 재난임을 강조한다. “코로나 사태는 일부 전문가 단체와 정부의 협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으며 사회구성원 모두가 함께 이겨내야 한다. 이미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외국인이나 특정 지역, 종교 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중단하고 인권과 연대의 관점에서 이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갈 것을 호소한다(pp.52~53).”

우리사회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고 한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우리사회의 전반에 대해 성찰하게 만들었듯이(김종엽 외, 2016), 코로나19도 그럴 것이다. 생명의 가치에 대해, 자유와 인권에 대해, 의료시스템에 대해, 돌봄의 방식에 대해, 앞으로 수많은 성찰들이 나올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고통을 받은 시민들과 위기극복을 위해 헌신한 수많은 영웅들을 위해서라도 이번의 재난을 통해 우리사회가 더 나은 길로 한 발짝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것은 기본소득일 수도 있고, 공공의료의 확충일 수도 있고, 지역사회 돌봄의 정착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사회복지도 코로나19 이후의 사회에 대해 적극적인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연구부 김지영 jykim839@dwf.kr


[ 참고문헌 ]
국회예산정책처(2020) 코로나19 대응 긴급재난 지원금 관련 사례 분석: 주요국 및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2020.4.13.)
김종엽 외(2016) 세월호 이후의 사회과학. 서울: 그린비.
참여연대사회복지위원회(2020) [보도자료]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한 노동·시민사회의 제언. 월간 복지동향. 2020년 4월호. pp.52~58.
천관율(2020) 민주주의 국가에서 바이러스를 이기려면 필요한 것. 시사IN(2020.3.17.)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562 (검색일: 2020.4.15.)